교회 개척에 대한 부담

신학교에 들어갔을때 비전이 뚜렷한 많은 동기들이 부러웠다. “나는 중국선교를 꿈꾼다.” “나는 이런교회를 꿈꾼다.” “나는 학교선교에 꿈이 있다.” 그 부러움은 항상 나를 돌아보게 했고, 나는 왜 그런 꿈이 없을까 항상 스스로 그 꿈을 물어봤던 적이 있다. 그럴때 기도하고 생각하는 주에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속에 부어주신 것은 “What is the first, what is the second” 즉, 우선 순위에 대한 것이었고,
어디에 있던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너의 갈 길이다는 확신을 주셨다. 선교지를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고, 목회를 하라고 하면 목회를 하는 것이고, 전문사역을 하라고 하면 또 그것을 하는 것이지 이것이 “나의 사역”이라고 한정 짓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드렸다.

잠깐 돌아보면, 고등학교에 공과대학을 꿈을 꾸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갑자기 “목회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역자”로 하나님의 부름이 있었다. 의심하고 또 두드려보고 나와 적성이 맞지 않는 이길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그렇게 부인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앞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신학대학교 4년, 대학원3년을 보내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훌륭한 3분의 목사님(손현보목사님, 정근두목사님, 남우택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함께 있으면서도 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목회를 배우려고 애를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주어진 사역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군에 있을때 군종으로 섬겨야 했을때에는 반주자 없는 성가대를 위해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사역을 했었고, 찬양팀이 없는 교회에서는 드럼을 배워 가르치면서 찬양팀을 만들어 나갔고, 교회행정이 절실하게 필요할때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히면서 교회전산화를 해나갔고, 아이들 사역을 위해서 미친듯이 인형극을 익혀 공연을 했었고, 교회 웹사이트가 필요할때에는 서점에서 책을 뒤져가며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제자훈련의 기회가 있을때 어떻게 하면 제자훈련을 잘 할 수 있을까 절실하게 훈련을 받으려 했었고, 설교의 기회가 있을때에는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설교책을 탐독하고 분석하고,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그렇게 밤낮으로 부르짖었다.

그렇게해서 유학의 길에 올랐고, 갑작스런 변화는 몸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도전의 연속이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의 비전과 꿈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이민교회를 접하면서 부족하고 무지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나의 한계에서 주어진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렸했었다.

그러다 잠시, 어떻게 보면 가정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을 반성하며 가정(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교회개척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 부담은 신학교 들어갈때와 똑같은 영적, 심리적 부담감을 가져다 주었다. 어떤 때에는 밤새도록 끙끙대며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이 시점에 똑같이 하나님 앞에 갈등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다시 응답받고 점점 회복되어가는 것은 처음과 같은 하나님의 응답이다.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 “나의 사역” “내가 할 수 있는 사역”에 대한 한계를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안주하려는 나의 모습을 보고 반성하며 회개한다.

이제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할 차례이다. 그러면 무엇에 대한 최선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큰교회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정말 무엇에 하나님이 “최선”을 다하라고 이렇게 까지 부르시고 계시는 걸까?

마음속에 다가오는 키워드는 “변화”이다. 주변사람들이 우리를 찾으면서 “교회를 언제 시작하시느야”라고 묻는 대화중에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내가 나갈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아니라 “나와 내 가정이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할 수 있는 그런 교회”를 찾고 있다는 마치 마게도냐의 환상속에 나타난 사람처럼 그런 갈급한 음성을 내가 듣지 못한 것 같다.

“하나님 나라안에서 건강, 감사, 거룩, 감동의 삶으로 변화하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