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이시대에 필요한 도지사인가?
홍준표 경상남도 도지사의 말이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먹으로 가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그 예산으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예산을 지원해서 “신분상승을 유도하고” “개천에서 용이 나도록 하겠다“고 한다. 우선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급식자체를 비용적인 측면에서만 고려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고, 또 돈만 투자하면 개천에 있는 사람을 용으로 만든다고 하는 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쳐도 홍준표가 키우는 용된 사람은 무슨 형의 사람일까? 아주 궁금하다. 돈으로 용된 사람들이 4대강으로 나라를 망쳐먹는 이 마당에 인성과 성품을 고려하지 않고 스펙과 출세만 하면 된다는 식의 이 발언은 어느적 시대의 말인가! 또 그렇다쳐도, 현재에도 OECD중에서 최고의 교육열을 가지고 대학을 졸업하고, Ph.D학위를 받아도, 보장받는 일거리가 없는 청년실업의 대국을 만들어놓고 이 나라에서 그렇게 용이되라는 것은 정말 무슨뜻일까?
어느시대도 돈이 최고이고, 돈이면 안되는게 없는 것은 사실상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방식의 문제이지, 보편적 인간가치는 아니다. 이런 왜곡된 가치를 신성하고 보편적이어야하는 인성교육의 장에 전혀 말도안되는 경제손익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인간을 용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 밥을 좀 더 잘먹인다고 그것으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준다는 표현들이 얼마나 경악스러운가? 경기도 교육감의 말처럼 사실은 “무상급식”이라는 말자체가 틀렸다. “의무급식” “교육급식”처럼 교육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한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서민신청서”를 작성하는 서민들의 차별된 마음은 또 어떤가? “있는 집”의 아이들의 맛갈스러운 도시락을 먹는 것을 보는 “제대로 된 급식”을 먹어야하는 차별을 받는 아이들의 상처는? 아이들이 급식비를 내지 않을때 다그쳐야할지 모르는 척해야할지 고민에 빠지는 선생님은 또 어떤 마음일까? 부모들 사이에서도 급식비를 신청할까 말까하는 그 따가로운 사회적인 체면과 자존심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모든 사람들을 마음을 위로하면서 정말 “선별적 급식”을하고, 남는 돈으로 교육을 지원하려면 한 사람에게 얼마를 줘야 그 차별의 댓가에 대한 위로를 받을까? 1년에 50만원이란다. 이것으로 개천에서 과연 용이 날까?
노이즈마케팅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자리매김을 확고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해도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정치마케팅 행보는 너무한 짓이다. 집에서도 아무리 예산이 부족해도 허리띠를 졸여매도 아이들 밥먹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가장의 마음이고 역할이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어떻게 도지사라는 직위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지 그 시스템에 대해서 궁금하다. 도지사라는 직위가 가지는 행정적 결정권과, 감독권이 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루어진 체제를 변경할때에는 역시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교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육청과 협의도 없고, 교육의 현장을 담당하는 일선교사들간의 담화도 없고, 심지어 학부모협의체와도 아무런 대화도 없이 단지 여론조사가 국민의 뜻인냥, 몇몇 정치인들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것이다”라는 모호한 투자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어떻게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민주주의적인 합의에 의해서 이루워 놓을 질서를 무력으로 집권했던 그시대의 갑질의 정치적 권위와 무엇이 다른가?
소통의 시대에 소통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왜 크든 작든 어떤 갑의 직위에 올라서면 이런 갑질의 결정을 마음대로 하는지 모르겠다. 지도자를 아무생각없이 믿었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따라오라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는 시대는 아니다. 홍준표 과연 이시대에 부합되는 도지사일까? 전형적인 정치인의 말바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