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무엇이 중헌디?
한국영화 “곡성” 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아역배우의 소스라치는 연기때문인지 아니면 영화흐름에서 허를 찌르는 장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사는 한참 유행했습니다. 회사나 사회단체, 국가 또는 개인적으로 진짜 중요한 것을 모르고 엉뚱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뛰어가는 우리네 삶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오늘 종려주일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교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자고 특별새벽기도도하고, 금식도 하고, 금요일은 “성금요일”이라 부르면서 여러 가지 의식을 가지고 “중요한 십자가”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은 문화금식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밥 굶는 금식이 한때 유행(?)이었는데 요즘 같은 미디어홍수 시대에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을 얻어 교회마다 미디어금식을 하려고 합니다. “일주일 동안 카톡안하기.”사실 이것도 너무 힘들어 한 끼 금식처럼 금요일에만 SNS안하기, 드라마 안보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진짜 중요한 것은 모르고 이런 의식적인 것들을 하느냐 안하느냐? 고난주간을 조용히 지내느냐 안하느냐? 고난주간에 골프를 칠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하다 보니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는 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 하는 정도”, “단기간에 절제에 동참하는 정도”로 그 수준을 낮추게 되었습니다. 정말 “무엇이 중헌디?”라고 외쳐볼만 할 시대입니다.
고난주간에 의식지킴보다는 우리의 모든 이성과 감성으로 주님의 고난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아침이나 저녁에 꼭 가져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자취라고 한 베드로전서2:21절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는 바울의 고백과 헌신(골1:24)이 무슨 뜻인지 고민해봅시다. 그래서 일주일의 고난주간을 정성껏 보냈다는 괴팍한 논리에 기만당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처럼 고난의 삶을 자처하며 살 수 있을까 진지하게 헌신하며 결단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